1.
김연아와 쇼트트랙 정도에서 메달을 기대했었는데, 이번 뱅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기대하지 못한 빙속에서 벌써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가 나와서 참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뻐하며 신문 기사를 보던 중 일간스포츠의 기사가 눈에 띄더군요.
[헬로 밴쿠버] 일본 ‘한국의 빙속 선전, 씁쓸하네..’
뭐, 기사 내용이야 일본이 꾸준히 투자를 했건만 같은 체형의 한국이 메달은 사냥하는데 비해 일본은 좀 더 적은 수확을 얻는다는 이야기긴합니다. 그러나 제 시선을 잡아맨 것은 전혀 다른 내용을 담은 글귀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김연아가 위상을 빛내고 있지만, 사실 김연아 뒤의 저변은 얕은 게 사실이죠.
아사다 마오가 없어도 안도 미키나 유카리 나카노, 스즈키 아키코 등이 든든히 받치고 있는 일본 피겨보다 한국 피겨가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피겨 스케이팅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위 글에서도 나왔지만 피겨도 우리나라는 김연아 빼면 없습니다. 동계 종목만 그런다고요?
마라톤도 황영조/이봉주 이후 누가 있던가요? 또, 비록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가 전승으로 우승은 했지만, 두터운 미/일 야구의
저변은 지금도 부럽고 두렵습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스포츠만의 이야기일까요?
많은 경우, 한국은 고 놈의 저변이 얕은 것 때문에 고민이 많아 보입니다.
2.
저변이 얕은 이유야 여러가지이겠지만, 제 지인 중의 한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특히 생각이 많이 납니다.
"우리나라는 희안해서 투자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투자와 지원을 받으려면 먼저 성과를 내야 한다. 즉, 한국은 정말 억울하면 출세해야 한다."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말에 수긍하고 이것이 얕은 저변의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연아가 지금도 무명이었으면 아마 그녀는 지금과 같이 스폰서 줄줄히 달고 스케이팅을 하기는 커녕, 여전히 가난하게 피겨스케이팅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스키점프도 세계 대회에서 성과를 낸 이후에야 영화화가 되어 지원 좀 받게 되었고, 봅슬레이도 세계 대회에서 깜짝 입상을 한 이후에야 무한도전 덕 좀 봐서 봅슬레이 두 대 생겼지요.
더 놀라운 점은 이러한 사실이,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 열겠다고 벌써 세 번째 도전하고(대충 잡아도 12년째 도전입니다), 더군다나 입만 뻥끗하면 법치, 법치하면서 엄청난 세금 포탈로 유죄 판결 맞은 사람을, "역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비아냥까지 들어가며 동계올림픽 유치하겠다고 사면까지 하는 나라에서의, 동계 올림픽 종목 선수들이 처한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김연아는 캐나다에서 훈련하고, 스키 점프, 봅슬레이 선수들은 본의아니게 해외 전훈을 다니고 있죠. 10년 넘게 이러고 있다면 평창에 벌써 동계올림픽 경기장이 들어서도 두 번은 들어섰습니다. 러시아 소치에게 평창이 처발린 이유가 '한국이 러시아보다 동계 올림픽 경기력이 떨어져서'라는 것을 모를 리는 없을 터, 정치적 부담까지 지면서 비리 저지른 인사를 사면은 할지언정, 동계 올림픽 종목 육성은, 그나마 선수들이 세계 대회 입상이라는, 정말 거대한 성과를 낸 분야에서나 조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3.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중 한니발 전쟁을 다룬 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록 한니발은 계속 전쟁을 이기고 수도 로마 코 앞까지 나타날 정도로 이탈리아 반도를 휘젓고 다녔지만, 로마는 계속 새로운 병력과 장수를 내보냈고, 한니발은 결국 중과부적으로 로마에 패배했다는 이죠. 로마연합이라는 집단 방위 체제 덕으로 병사들을 계속 징집하여 전장으로 내보낼 수가 있었고, 한 장군이 전쟁에서 져도 그를 대체할 다른 장군이 계속 있었다는 것입니다. 상어의 이빨이 빠져도 뒤에 있던 이빨이 바로 그 빠진 자리를 채우듯이요.
인용한 기사는 아래와 같이 마무리됩니다.
"일본에서 쇼트트랙 기술을 들여와 한국 쇼트트랙을 최강으로 만든 한국 빙상경기연맹의 전명규 부회장은 "지금 한국이 좋은 성적을 냈다
하더라도, 일본을 절대 얕봐서는 안된다. 우리도 열심히 투자하고 있지만, 그 규모가 게임이 안된다. 그들의 투자가 몇 년 뒤에 나타날 지 모를
일"이라면서 걱정을 하더군요. 저도 이 곳 밴쿠버에서 같은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본이 하는 일은 투자를 하고, 시스템을 만들어 결국 계속 사람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 시스템이 갖춰지면, 한 두 명 영웅으로는 못 당해냅니다.
4.
결국 개인 플레이가 아니라 인재를 기르는 시스템이 문제고, 인재를 기르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며, 결국 집단 간의 경쟁은 그 집단이 가진 시스템의 경쟁일 것입니다. 삼국지에서 여포는 당대 최고의 무장이었으나, 결국 인재가 널린 조조에게 죽은 점은, 참 많은 점을 시사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